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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의 연기를 보며 감탄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박은빈이 내놓은 답

정체를 숨기고 조선의 왕이 된 여인, 오직 좋아한다는 마음 하나로 버티는 바이올린 전공생, 만년 꼴찌 야구팀의 운영팀장. 배우 박은빈은 한 번도 오롯이 그들이었던 적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방영본을 볼 때면 참 좋다고, “저게 바로 그들의 얼굴이구나” 싶다고.

BY오성윤2021.12.22
 
 

박은빈의 다른 얼굴들

 
〈연모〉를 택한 이유는 ‘내가 언제 왕을 연기해보겠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고 했어요. 촬영이 다 끝났는데, 만족스러웠을까요?
네. 해보지 못했던 걸 정말 원 없이 해본 것 같아요. 사실 제가 세자나 왕을 연기한다는 건 꿈조차 품어보지 못했던 일이거든요. 그래서 대본을 보는 순간, ‘내가 이런 역할을 해볼 수 있다고?’ 하면서 굉장히 새로운 꿈이 생기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만약 아쉬운 점이 좀 있다 해도 제 스스로 돌아보기에는 만족스러운 것 같아요. 그런 마음으로 다들 어려운 도전이라고 했던 작품에 임했고, 무사히 마쳤으니까.
 
부담은 없었어요? 남장 여자라는 설정으로 시청자를 납득시키고 몰입하게 만들 수 있느냐 하는 건 어쩌면 연기나 노력 바깥의 영역일 수도 있잖아요.
감독님은 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이 많았대요. 여자가 왕이 된다는 걸 어떻게 설득시킬 수 있을까, 과연 어떤 배우가 어떻게 풀어줄 수 있을까,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희한하게 저는 별로 걱정을 안 했어요. 그냥 저에게 이런 연기를 할 수 있는 기회가 왔구나 하는 반가움밖에 없었죠. 사극이라는 장르도 저한테는 고향 같은 느낌이 있었고.
 
블랙 니트,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미우미우.

블랙 니트, 스트라이프 셔츠 모두 미우미우.

〈연모〉는 예고편이 공개됐을 때부터 인터넷에서 난리가 났던 걸로 기억해요. 휘(박은빈의 극 중 캐릭터)가 너무 멋있어서.
난리가 났다고 하셔서 순간 깜짝 놀랐어요. ‘키가 너무 작다고 난리가 났나?’(웃음)
 
(웃음) 제 기억으로는 잘생겨서 화제가 됐던 것 같아요.
잘생겼다는 얘기는 현장에서도 많이 들었어요. 사실 티저 촬영할 때 오랜만에 여장을… 여장이라고 하니까 이상하네요? 아무튼 여장을 해야 했는데. 그때 그게 되게 어색하더라고요. 저도 모르는 새에 남장이 너무 익숙해져 있었던 거죠. 그래서 그날도 뭔가 좀 부끄러웠어요. 빨리 남장으로 돌아가고 싶은 그런 거 있잖아요.
 
〈연모〉의 특징 중 하나가, 동일한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고 편집해서 보여주는 기법이었던 것 같아요. 특히 로맨틱한 신이나 슬픈 신에서. 촬영 과정이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는 오히려 더 좋았어요. 제가 미묘하게 표현하는 부분을 잘 캐치할 수 있는 여건이잖아요. 그래서 더 마음 놓고 연기할 수 있었어요. 미세한 눈썹 꿈틀거림 같은 거 하나만으로 다 포착이 되게 해주셨으니까. 물론 같은 걸 여러 번 촬영하는 게 힘들 때도 있긴 했죠. 제가 소리치는 장면이 많았잖아요. 잡히는인물이 많으면 몇십 번 해야 하기도 하는데, 어떨 때는 체력적으로 더 이상 끌어올릴 게 없는 거예요. 그런데 뭐, 또 그조차도 제가 이겨내야 하는 거니까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해내야죠.(〈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메이킹 필름에서 나와 유명해진 박은빈의 어록)
네네. 해내야죠.(웃음) 그런 마음으로 매일 제 자신을 리셋하면서 잘 버텼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그런 편집 스타일이 배우들의 연기나 미모를 감상하기에는 좋은 장치였던 것 같아요. 특히 휘가 술 취해 잠든 정지운(로운 분)에게 입 맞추는 대목에서, 제가 혼자 보다가 휘의 눈빛 클로즈업을 보고 육성으로 감탄했거든요. ‘눈빛만으로 이렇게 사람 마음을 미어지게 하는 게 양조위 말고도 되는 거였어?’ 하고.
하하하. 감사합니다. 사실 그 부분은 애드리브였는데.
 
애드리브였어요?
제 기억으로는 그 장면이 윤목을 만지다가 잠들어 있는 정지운을 보고 약간 참을 수 없는 이끌림에 마음이 넘쳐서 뽀뽀를 쪽 하고 폐정각을 벗어난다, 이 정도였던 것 같아요. 그런데 뽀뽀를 하기 전까지의 과정을 좀… 그냥 입술을 훔치는 것은 도둑이잖아요.(웃음) 그냥 제 마음이 그랬어요. 그 애틋함이 그냥 입술만 훔쳐서는 안 될 것 같았던 거죠. 처음부터 입술을 훔치기 위해 다가간 게 아니라 그냥 좀 더 가까이서 보고 싶었고, 그간 표현할 수 없었던 마음을 이런 때만이라도 이렇게 몰래 소중하게 꺼내 보는 거라는, 그런 부분이 필요할 것 같았어요. 결과적으로 많은 분이 그 장면에서 제가 느꼈던 감정을 함께 공감해주신 것 같아서, 저한테는 참 감사한 신이에요. 저도 방송을 보면서 제가 그냥 휘로서 연기를 한 순간이라고 느꼈고요.
 
그런 장면에서는 은빈 씨 스스로도 감탄하기도 하나요? 감탄이라는 표현이 좀 그렇다면 만족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고….
그렇지는 않고요.(웃음) 그냥, 제가 모니터링을 하면서 좋은 순간들은 있죠. ‘아, 저건 휘의 표정이구나’ 하고 느껴질 때. 그러니까 제가 박은빈으로서 어떤 모습이 영상에 예쁘게 나오는지는 이미 잘 알잖아요. 많이 노출되어 봤으니까. 그런데 카메라가 다른 방식으로 저를 촬영하고 제가 저를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진심을 담아 연기하면 그걸 뒤늦게 영상으로 볼 때 생경함이 있는 것 같아요. ‘저 얼굴이 휘의 얼굴이구나’ 싶고, 연기자로서 되게 뿌듯함을 느끼게 되는 것 같고요.
 
배우 박은빈의 명연기로 또 자주 회자되는 게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에서 송아가 고백하는 장면이잖아요. 로운 씨도 그 장면을 너무 좋아해서 직접 물어본 적도 있다고 들었어요. 대본에 어떻게 쓰여 있었는지, 그걸 어떻게 해석해서 연기한 건지.
저희가 촬영하면서 많은 대화를 나눌 수밖에 없잖아요. 서로의 캐릭터에 대해, 대본상에 생략되었던 감정에 대해 서로 잘 이해하고 주고받아야 하는 파트너였으니까요. 그러다가 로운 씨가 고맙게도 제 전작을 예로 들면서 그건 어떻게 표현한 거냐고 물었던 거죠. 그래서 저도 대본에는 이런 정도만 쓰여 있었는데, 그러면 안 될 것 같아서 이런 감정을 이렇게 표현해봤다, 그렇게 답을 해줬고요. 로운 씨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라는 작품을 되게 재밌게 봐줬더라고요. 아까 말씀드린 대로 제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다면 로운 씨는 그와 정반대인 것 같아요. 열정을 가지고 정말 많은 콘텐츠를 보면서 독학을 하는 친구인 것 같다고 느꼈어요. 
 
사실 저도 궁금했거든요. 송아의 마음이 질투와 외면에서 고백으로 이어지는 과정이 좀 빠르고 갑작스러웠잖아요. 그런데 표정이나 몸짓에서 짧은 순간에 정말 많은 감정과 혼란이 스쳐 지나가다 터지듯 고백한다는 게 보였고, 그래서 매끄러워진 건 물론이고 평면적이지 않은 감정이라 더 몰입하게 되는 것 같았어요.
어떻게 보면 저는 어릴 때부터 동적인 연기보다는 내면 연기를 많이 요구받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내밀한 연기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좀 많았던 것 같고요. 그런 복합적인 것을 표현하는 게 저는 좋아요. 왜 대본에서는 흐름상 생략하고 건너뛰어야 하는 부분들이 생기잖아요. 저는 제 역량을 동원해서 최대한 여백을 채우고 싶은 거죠. 시청자가 공백을 느껴서 ‘갑자기 저런다고?’ 하고 놀라지 않게. 그렇게 개연성을 살리고자 노력하고 설득하려고 하는 게 제 욕심이자 이제는 약간… 취미이자(웃음) 특기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화이트 드레스 디올.

화이트 드레스 디올.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로 작년 SBS 연기대상에서 최우수연기상을 받았죠. 수상 소감이 검색어 1위를 할 만큼 화제가 되기도 했어요.
일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자체가, 제가 스물아홉 살 때 스물아홉 살의 채송아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큰 인연으로 다가오는 작품이었어요. 제 20대를 정리하는 시간을 선물 받은 것 같았고. 그런데 또 감사하게도 상까지 받으면서 작품이 저에게 주는 의미를 수상 소감으로까지 남길 수 있었던 거죠. 제가 정말 어릴 때부터 외골수처럼 연기만 하면서, 연기만 좋아하면서 살아왔잖아요. 그렇게 꿈을 품고 살아온 어린 날의 저에게 감사할 수 있는 기회를 준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연기는 어릴 때부터 해왔지만 배우라는 길에 확신을 갖게 된 건 대학생 때였다고 들었어요.
어릴 때도 제가 이 일을 하는 걸 되게 특별하게 여기고 좋아했어요. 하지만 그러면서도 가슴 한편에는 ‘이게 내 적성에 맞나’ 하는 의문을 갖고 살았죠. 사람을 대하는 측면에서나 모두가 바라보는 환경에 노출되는 측면에서나 좀 내성적인 학생이었으니까요. 주위에는 제가 봐도 끼 넘치는 사람이 정말 많았고.
 
그때만 해도 ‘배우가 되려면 끼가 있어야 한다’는 식의 관념이 굉장히 강했죠.
맞아요. 그 말을 정말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던 거예요. 지난 일이라 이제는 다 잊었지만 그때 받은 상처들 때문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순간이 온다면 언제든 그만둬야지’ 생각하면서 살았던 것 같고요. 그러다가 대학에 가고 스스로에 대한 탐구를 더 많이 할 수 있게 된거죠. 어릴 때부터 정말 꿈이 많았던 제 자신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됐고. 이 일도 하고 싶고 저 일도 하고 싶고, 저는 늘 그랬거든요.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그렇게 하고 싶은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게 연기더라고요. 그걸 깨닫는 순간, 연기자라는 직업이 뭔가 저에게 ‘이렇게 확’ 합쳐지는 기분을 느꼈던 것 같아요. ‘연기가 내 적성에 참 잘 맞는 직업이었구나’ ‘다행이다’ 그제서야 깨달은 거죠.
 
저는 인터뷰하면서 이럴 때가 제일 안타까운 것 같아요.
어떤 때요?
 
‘이렇게 확’ 합쳐지는 기분을 느꼈다고 하실 때의 목소리 톤이나 본인 몸을 꼭 껴안는 모습에서 그 마음까지 와닿을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결국 원고로 다 옮기지는 못할 테니까요.
(웃음) 뭐랄까, 그 순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제 자아들이 하나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었어요. 늘 고민거리였는데 그렇게 다른 방식으로 보니까 축복이 되더라고요. 그래서 대학 시절이 참 힘들기도 했지만 결국 지금의 저를 있게 해준, 핵심이 되는 순간들이었던 것 같아요.
 
 
*박은빈 인터뷰 풀버전은 에스콰이어 1월호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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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redit

  • EDITOR 오성윤
  • PHOTOGRAPHER 채대한
  • STYLIST 강이슬
  • HAIR 이상미
  • MAKEUP 오가영
  • ASSISTANT 송채연
  • LOCATION 소피텔 앰배서더 서울
  • digital designer 김희진